폴리나 보르숙의 저서 '사이버이기주의'가 25년 만에 재출간되었습니다. 기술 낙관론 뒤에 숨겨진 반규제적이고 배타적인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예견했던 그녀의 통찰이, 오늘날 거대 기술 기업의 권력화와 맞물려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기술 산업의 역사는 흔히 어제의 혁신이 오늘의 구식으로 치부되는 속도전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2000년 출간되었던 폴리나 보르숙(Paulina Borsook)의 저서 『사이버이기주의(Cyberselfish)』는 예외적인 경로를 걷고 있다. 절판되었던 이 책은 최근 틴 하우스(Tin House)를 통해 재출간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1][2].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이 책이 현대 기술 사회의 '독성'을 설명하는 예언서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르숙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실리콘밸리 주변을 관찰하며, 기술 산업이 가진 '테크노 리버테리어니즘(Techno-libertarianism)'의 실체를 추적했다[1]. 그녀는 이를 단순히 정치적 성향으로 규정하지 않고, 실리콘밸리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신념의 꾸러미'로 정의한다[1]. 이들은 정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규제에는 극도로 적대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기술적 성취가 곧 사회적 권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오만한 엘리트 의식을 공유한다[1][2].
보르숙은 실리콘밸리 내부의 문화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조지 길더(George Gilder)의 이름을 딴 '길더(Gilders)'는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리더십 계층을 의미하며,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로 대표되는 '레이버(Ravers)'는 마약, 섹스, 버닝맨 축제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대변한다[1].
흥미로운 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두 갈래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에는 기독교 민족주의와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는 경영진이 존재하는 동시에, AI와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신봉하며 실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이 공존한다[1]. 보르숙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기술 권력층이 역사나 정치학적 소양 없이 기술적 성공만을 앞세워 사회 정책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너드들의 복수'가 초래한 진정한 위기라고 지적한다[2].
보르숙의 분석이 오늘날 더욱 날카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가 우려했던 '기술 권력의 비대화'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2]. 과거에는 기술 기업들이 세상을 바꾸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거대 기술 기업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거나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하는 양상을 보인다[3].
물론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보르숙이 묘사한 '이기주의'에 매몰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여전히 많은 실무자와 구성원들은 민주적인 가치를 지향하며, 기업 내부에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3]. 또한, 보르숙 본인조차 자신의 저서가 다시 주목받는 상황을 두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할 만큼, 기술 산업의 변화 속도는 예측 범위를 벗어나 있다[4].
결국 『사이버이기주의』의 재출간은 기술 산업이 스스로의 철학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시사한다. 기술이 사회의 가장 큰 수혜를 입으면서도 정작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다면, 그 혁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보르숙이 25년 전 던졌던 이 질문은, 오늘날 기술과 권력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려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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